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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재정적자 "눈덩이"

highheat 2007. 4. 23. 15:30
“솔직히 반성하고 있다. 일본이 너무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다.” 일본 최고의 엘리트 공무원 집단인 재무성 간부들의 말이다. 일본은 지난 10여년에 걸친 장기불황을 뚫고 또다시 도약할 기회를 맞았고, 일본 은행은 지난 14일 ‘디플레 탈피’와 ‘제로금리’ 해제를 선언했지만 재무성은 일본 경제의 앞날에 대한 우려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세계 두번째 부국 일본의 돈 관리를 책임지는 재무성은 재정적자를 일본 경제의 ‘아킬레스건’으로 꼽고 있다.

◆재정적자 위험 수위=일본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70% 수준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재정적자가 GDP 대비 150%라고 주장하면서 숨어 있는 빚은 계산에 넣지 않고 있다.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재무상은 최근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국채 발행 잔액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많다. 채무 잔액이 GDP 대비 150%를 넘는 나라가 지탱하는 경우는 파산한 국가를 제외하면 그 유례가 없다. 과거 파산에 근접했다는 이탈리아도 150%까지 가지는 않았다”며 적자 재정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고이즈미 개혁을 총지휘해 온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 총무상도 이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재정은 시든 얼굴을 화장으로 감추고 있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2005년 말 OECD 조사 결과 일본정부의 누적 채무 잔액은 약 774조엔이며, 이는 GDP 대비 160%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가구당 부담 액수는 1643만엔. 미국 재정적자가 문제되고 있지만 미국은 GDP의 60%를 넘는 수준이며 액수도 일본의 절반 이하다.

더욱이 일본 경제전문가들은 재정투융자 등 드러나지 않은 공적 부분의 빚을 포함하면 누적된 빚이 1100조엔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재정투융자 중에서 가장 큰 부실덩어리는 불량채권이나 채무보증액이다. 정부가 92개 산하기관에 빌려준 돈은 430조엔이지만 절반 가까이가 부실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 위기 배경=1980년 말까지 호황을 구가하던 일본 경제는 1990년대 초부터 거품이 한꺼번에 꺼지면서 장기 경제불황기에 접어들었다. 당황한 일본 정부는 경기 회복을 위해 앞뒤 가릴 것 없이 재정 투입을 반복했다. 경기 불황으로 세수가 줄자 부족한 재정을 국채 발행으로 조달하면서 재정적자를 불려나갔다. 특히 경기 부양을 위한 감세정책으로 세수 부족은 더욱 심화됐다. 일본의 세수는 1990년 60조엔 규모였으나 작년 말 44조엔으로 줄었다.

올해의 경우 일본 정부 일반회계 예산은 약 80조엔이지만 세수와 해외수익을 합해도 50조엔을 조금 넘는다. 그러니 매년 부족분 30조∼40조엔은 국채 발행을 통해 조달해야 한다. 재정 투입을 통해 경제불황을 타개했으나 그 후유증이 심각한 게 일본의 경제사정이다.

지출이 수입의 두배에 육박하는 일본 경제가 지금까지 지탱해온 이유는 1500조엔 규모의 민간금융자산이 국채 발행을 대부분 소화해 주기 때문이다. 국채를 사주는 곳은 주로 정부와 민간 금융기관들로, 개인이 예금한 금융자산으로 일본 국채를 사는 것이다. 이 기관투자가들이 국민이 예금한 돈을 재원으로 국채를 매입, 정부의 예산부족액을 메워 주고 있다.

이들이 국채를 매입하는 이유는 장·단기 금리 차이가 커서 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10년 만기 국채의 금리는 최고 연 1.7% 인 데 단기정책금리는 제로 수준이다. 지난해 말 현재 우편저금, 간이보험, 국민연금 등 정부계 금융기관이 41%,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15%, 일반은행과 보험사 등이 국채의 34%를 갖고 있고, 나머지는 개인 또는 외국계 투자펀드가 매입했다.

일본정부의 재정 파탄을 막아주는 또 하나의 버팀목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일본 제조업체들이다. 경쟁력 높은 기업들이 벌어들이는 엄청난 외화는 국채를 소화하는 데 문제가 없도록 만든다.

◆향후 전망=앞으로도 매년 30조엔 정도 신규 발행되는 국채가 별 탈 없이 소화될지는 불투명하다. 제로금리 해제로 단기금리가 높아지는 추세에서 장단기 금리차로 발생하는 국채 수익을 보장하기가 어려워지는 데다 기업들이 수익 악화를 감수하고 벌어들인 이익금으로 계속 국채를 사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인구 감소에 따른 저축률 하락이다. 1970년 20%에 달했던 저축률은 1980년대 12∼13%대, 1990년대 10%대로 떨어진 뒤 2000년대 들어서는 6∼7%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 추세대로라면 2009년쯤 저축률은 제로 또는 마이너스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스터 엔’으로 유명한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게이오대 교수는 재정파탄의 최종 시한을 2020년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15년 안에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일본 재정은 파산선고에 직면할 것이란 경고다. 인구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라는 사회현상이 저축률 저하와 함께 재정악화를 심화시킬 것이란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국제 신용조사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일본이 고령화에 대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부채비율은 2010년에는 GDP 대비 204%로 뛰어오르고 2020년쯤에는 287%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제로금리 해제로 이자부담 증가/국가자산 매각 연금축소 등 모색

일본 정부 대응방안

2005년 말 일본 정부의 정책 중추인 ‘경제재정자문회의’는 총리 관저에서 심각한 회의를 열었다. 2006년에 제로금리가 해제되면 국채의 이자부담이 늘어 재정 압박을 가중시킬 것으로 예상하고 그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 회의에서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 총무상은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楨一) 재무상에게 따졌다. 재무성이 솔선해 재정 재건에 앞장서야 하며 낭비요인을 없애야 한다는 요지였다.

사흘 뒤 재무성은 예산에서 12억엔을 떼어내 국채 상환에 충당하겠다고 발표했다. 재무성은 동시에 430조엔에 이르는 현 국가보유 자산 중 절반을 향후 10년간 매각해 빚 갚는 데 쓰겠다고 밝혔다. 빚으로 연명하는 부실한 지방자치단체에 대해서도 파산 선고 등으로 도태시키겠다고 경고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2006년의 화두는 재정 개혁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사회보장비의 대폭 축소 등 재정 지출 감축과 세금 인상안을 고려하고 있다. 사회보장비는 2004년 조세 수입 44조엔의 절반 가까운 20조엔이 연금 지급 등으로 쓰일 정도로 방대한 규모다. 그러나 연금 축소는 줄이려는 세대와 혜택 받으려는 세대 간의 갈등을 낳는 등 더 큰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2006년 예산 심의에서 자민당이 연금 축소안을 관철시키자 원로단체가 들고 일어나는 등 후유증이 만만찮았다. 일본의 차기 정부는 세금 인상을 통한 재정 개혁안을 강력히 밀어붙일 태세다. 사회보장비 축소와 함께 세입을 늘려 재정적자를 줄인다는 방안이다. 이 또한 정권 존립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면 함부로 쓰기 어려운 대책이다. 재무성은 간접세인 소비세(부가세)를 늘리는 방안을 고려 중이지만, 이는 서민의 생활을 빠듯하게 만들 게 뻔하다. 향후 일본은 세금 인상 폭을 20조엔 규모로 정해 재정적자의 70∼80%를 메울 계획이다.